‘확장’의 사전적 의미는 본연의 형태에서 범위, 규모, 세력 따위를 늘려서 넓힌다는 것을 뜻한다. 그 범위는 물리적인 숫자가 증가하는 개념을 넘어 확장된 형태가 지닌 질적 향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확장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서 있는 상태에서 손을 뻗은 채 한 바퀴를 둥글게 돌아본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만들어진 원의 물리적인 영역은 우리의 움직임이 만든 최소한의 자유로운 형태의 영역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영역의 범위를 넓히고 싶다면 둥근 형태로 연결된 부분에서 누군가가 벗어나야 하는데, 그것은 개인 스스로는 불가능하고 집단의 움직임이 발생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사우스빅, 연누리, 숏핑거의 전시 《EXTENTION》의 전시명은 확장(Extension)과 전시(Exhibition)을 뜻하는 단어를 합성한 고유명사를 뜻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은, 하나의 원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영역을 내어주고 혹은 다른 공간의 영역으로 벗어나는 움직임을 통한 예술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개인에서 나아가 집단이 모였을 때 그 사회적 의미와 범위가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처럼, 미디어 작가 사우스빅, 설치 작가 연누리, 뮤지션 숏핑거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각각의 장르에 국한된 예술이 아니다. 전시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고 확장하며 모든 예술에 흐르고 있는 보편적 가치를 탐구하고 감각하도록 한다.
사우스빅은 가상과 현실의 공간을 하나의 공간으로 융합 시킴으로써 무한한 스케일로 존재하는 비전의 확장을 보여준다. 그는 그래픽 요소에 기반을 둔 작업부터 3D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활용하여 다양한 시각 이미지를 제작해 왔다. 그 과정에서 사우스빅은 3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프로젝션 맵핑을 시도하던 중, 스크린으로도 사용하기 힘든 좁은 벽과 프로젝터가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를 바라보며, 이 제한된 공간을 무제한적 영역으로 치환하는 시도를 한다. 디지털 영역에 제한되어 있던 예술을 현실의 공간으로 이동/확장시킴으로써, 무한한 공간을 점유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적 전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스크린의 경계를 벗어나 현실 공간에서 펼쳐지는 그의 작품은 가상과 현실이 자연스레 융합되어 예술적 차원에서 보다 직접적이고 입체적인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사우스빅의 작업에서 눈 여겨 볼 핵심 중 하나는 창작 도구의 확장이다. 기존에는 독립적으로 제작되고 재생되는 비주얼과 사운드가 사용됐다면, 이번에는 비주얼 이미지가 모든 종류의 사운드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방식이 나타난다. 전자는 미리 제작되어 고정된 형태의 작업이라면, 후자는 실시간으로 생성되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동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시도는 작가에게는 창작에 대한 더 깊은 통찰과, 예술적 표현의 자유도를 체험하는 시간을 제공했으며, 관객에게는 물리적인 제한에서 벗어난 감각을 경험하도록 한다.
사우스빅이 시각의 제한된 영역을 무한한 감각의 영역으로 확장했다면, 작가 연누리는 유사한 맥락에서 청각적 영역을 시각적 영역과 융합하는 작업을 한다. 그는 빈티지 스피커를 수집하여 이를 재조합하는 설치 형태의 음향기기를 만든다. 연누리의 작업은 양질의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정해진 규칙과 기계의 구조 안에서 생성된 소리를 동일하게 감각하는 행위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연누리의 작업은 외형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일반적인 기계와 다른 형태의 구조를 지닌다. 연누리는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만드는 인클로저와 소리에 반응하는 시각적인 요소를 작품에 가미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소리의 품질을 판단할 수 있는 경계를 흐림과 동시에 시청각 예술의 장르를 결합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소리를 낸다는 목적성 아래 저마다의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소리를 들려주는 연누리의 작업은 단일한 목적의 기기가 아닌, 각기 다른 객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예술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전시의 작업들은 이전 작업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소리가 지닌 고유한 파동이 다각도로 구현되었다. 파동이 지닌 패턴이 시각 요소로 표현된 각각의 작업은 혁신적인 유닛으로 조합된 소리의 구조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또한, 작가는 빈티지 음향기기를 해체하여 재료로 사용하는 행위가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업사이클링(Upcycling)으로 해석되는 경향을 오히려 작업의 소재로 활용한다. 작가는 재생 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 PP)이라는 실질적인 환경 소재를 작품의 재료로 도입하여, 작업이 지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 놓았다. 작품을 구성하는 다양한 부품과, 고유하면서도 다채로운 소리와 그 모양, 동시대의 환경 문제 등, 다양한 선상에 놓여있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연누리의 작업은, 마치 여러 악기가 합주를 하는듯한 조화로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잠재된 안목과 감각을 확장시킨다.
한편, 테크노 DJ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뮤지션 숏핑거는 눈으로 감각되는 가시 세계를 비가시적 세계인 청각의 영역으로 변환하는 작업을한다. 예를 들어, 그는 졸업 전시에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에 부여된 모스부호를 활용한 폰트를 디자인하고 각각의 한글에 고유한 박자를 부여하여 전통민요인 아리랑을 미디 노트로 송출하는 작업을 시도한 바 있고, 안그라픽스에서 활동하며 네모틀 안에 고정되어 있는 한글 서체를 탈피시켜 다양한 글꼴을 개발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러면서 숏핑거는 이 세상의 가시적인 법칙에 존재하는 패턴으로부터 탈피하는 시도가 보이지는 않지만 이상적인 대상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믿는데, 그 믿음에는 음악과 소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처럼, 숏핑거는 과학이나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규칙에서 벗어난 가시적/비가시적 세계가 지닌 우연의 일치가 탄생시키는 아름다움을 청각의 세계에서 탐구한다.
따라서, 숏핑거의 소리는 규칙적인 패턴에서 탈피하는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정한 소리가 감지되는 듯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박자를 통해, 숏핑거는 듣는 이로 하여금 탈출구로서의 음악을 간접체험 하게 유도하고 각자가 무언가로부터의 해방을 느끼도록 한다. 또한, 그의 작업은 특정 음역대가 특정 인체를 회복시킨다는 원리를 반영하여, 소리를 통해 신체가 치유되는 경험과 이것이 나아가서 세상을 치유하길 바라는 바람을 담고 있다. 이처럼, 숏핑거의 작업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난 시청각의 요소가 서로 반응할 때 다양한 영향력이 생기는 지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가운데, 예술이 제한된 영역에 머물지 않고 개인과 사회, 문화와 예술 등의 다양한 영역으로 그 영향력을 확장하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우스빅, 연누리, 숏핑거의 협업 전시 《EXTENTION》은 각기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의 교류와 기술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예술적 시너지를 통해, 홀로는 도달할 수 없었을 새로운 창작의 영역을 확인시켜 준다. 사우스빅의 미디어, 연누리의 음향기기, 숏핑거의 사운드로 구성된 협업작품은 마치 각기 다른 신체 부위가 하나의 신체로서 존재하는 듯한 모습이다. 전시는 이처럼 고정된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본래의 한계를 넘어서는 예술가의 시도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선상에 놓여 있지만 예술의 공통분모를 보여주는 전시는 예술의 가장 큰 묘미 중 하나인 한계가 없는 예술의 가능성과, 그 과정에서 창조되는 관객과 작품 간의 새로운 차원의 관계를 마련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