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AK와 십화점이 기획한 《앙상블 Ensemble》 전시는 김창열(1929-2021)과 백남준(1932-2006)의 예술세계와 두 예술가의 인연이 꽃피운 ‘만남’이란 주제를 모티브로 한 전시입니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인연은 1983년 프랑스 파리에 있던 김창열의 스튜디오에서 시작됩니다. 이어 김창열이 백남준을 한국에 소개하며 1988년에 백남준의 국내 첫 개인전이 개최되었고, 당시 두 작가의 전담 갤러리스트로 활동한 BHAK의 박영덕은 두 작가의 예술적 행보에 동참합니다. 과거 예술이란 인연의 끈으로 이어진 예술가, 갤러리, 갤러리스트의 만남은 동시대의 우리에게도 이어집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김창열의 <회귀> 연작은 화가가 환갑 이후 인생의 원점으로 되돌아왔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캔버스에 영롱하게 묘사된 물방울은 전쟁의 상흔을 극복한 작가의 실존을 시각화한 것으로, 여기에는 한 시대와 개인의 기억, 우주의 순환, 내면적 성찰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TV와 라디오 등 전자 매체를 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한 백남준의 작품은 기계화 시대 속에서 디지털 네트워크를 인간(주체, 자아)과 기계(객체, 타자)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기계를 연결 고리로 역설하여 미디어 아트를 통해 인간과 기계,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며 소통과 사유의 장을 탄생시켰습니다. 이처럼 두 작가의 예술은 내적 세계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시시각각 관람객과의 시사적이고 긴밀한 만남을 유도합니다.
삶과 예술의 통합과 세상 만물과의 연계를 소망했던 김창열과 백남준. 두 작가의 이러한 예술적 의지와 우정은 2016년 삼청동에서 김창열이 벌인 백남준 10주기 추모 퍼포먼스에서 잘 드러납니다. 김창열은 백남준의 행위예술 ‘걸음을 위한 선(禪)’과 ‘바이올린 솔로’를 결합하여 긴 줄에 바이올린을 매단 채 삼청로를 걸었고 도착지에서 바이올린을 부숴버렸습니다. 퍼포먼스를 관람한 인근 관계자들이 함께 한자리에선 환호가 터졌고, 당시의 장면은 생전에 바이올린을 깨부수는 파격 퍼포먼스로 주목받았던 백남준을 떠올리게 하며 위로를 전합니다. 여기서 바이올린의 선은 열린 회로로서, 그 선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축을 넘나들고, 백남준과 김창열의 유대, 작가와 관객과의 만남의 접촉을 만들어냅니다.
김창열과 백남준의 예술적이며 물리적인 만남은 오랜 것이면서도 새로운 것으로 계속됩니다. 순수 미술을 다루는 BHAK와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십화점, 두 브랜드의 《앙상블 Ensemble》 협업 전시는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주요한 작가로 꼽히는 김창열과 백남준의 인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만남의 연장 무대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연한 만남이 낳은 기적과 그 기적이 낳은 새로운 만남이 만드는 커다랗고 강렬한 화음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글│임소희 (BHAK 큐레이터)
십화점 (서울 강남구 선릉로162길 5 1층)
월-일 11:00-20:00